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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퓰리처상 수상 원작 '세월'을 영화로

1999년 퓰리처상 수상 원작의 영화 'The hours'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을 알고 있다면 더욱 영화를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3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1920년대의 버지니아 울프, 1950년대의 로라 브라운, 2000년대 초의 클라리사 본. 그리고 소설 <댈러웨이 부인>까지 더 하면 총 4명의 여성이 등장하겠네요.

 

영화 '디 아워스' 들여다 보기

우선 '디 아워스'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는<댈러웨이 부인>의 영화 줄거리를 포함하겠습니다.

 

<댈러웨이 부인> 1920s

  <댈러웨이 부인> 1920s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댈러웨이 부인은 상류층에 속해있는 여성으로 정치가의 아내이자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여성입니다. 그렇게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어느 날 밤에 있을 파티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자꾸만 예전 추억들, 특히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피터'와 나누었던 추억이 자꾸만 피어오릅니다. 피터와 클라리사는 꽤나 깊은 사랑을 했었지만 클라리사는 낭만과 몽상가 기질을 갖고 있는 피터보다 차분하며 미래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지금의 남편 리처드 댈러웨이를 선택하게 되면서 현실에 부딪혀 이별을 맞게 되었습니다. 클라리사가 오늘 피터와의 추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피터 또한 오늘 파티에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여럿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날 낮에 창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참전용사 이야기였습니다. 런던은 아직 1차 세계대전의 그림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참전용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그의 죽음은 클라리사 댈러웨이에게 작지만 깊은 작용을 하게 되면서 클라리사는 파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다시금 고찰하기 시작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댈러웨이는 자신이 피터가 말했던 대로 안전한 감옥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정치인 남편과 살아가는 동안 거짓과 부패 속에서 살아가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참전용사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시 아름답게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버지니아 울프> 1920s

죽어버린 작은 새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니콜키드먼 분장)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환청 등을 앓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을 이유로 런던을 떠나 시골에서 남편과 지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금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입니다. 그녀는 그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라리사 댈러웨이를 소설 속에서 삶의 길로 보내질 죽음의 길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곤 댈러웨이 부인에게 다시 한번 삶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보인 버지니아 울프는 코트 속 무거운 돌을 한가득 넣고 강물에 뛰어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죠.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는 오래도록 회자되곤 합니다.

 

사랑하는 레너드, 
글도 제대로 못 쓰는 내 꼴 좀 봐요. 그동안 내 삶과 행복을 지켜주느라 그댄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아내며 모두가 날 떠나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당신. 이제 당신을 놔줘야 할 것 같군요.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잖아요.
레너드. 삶을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맞서 싸우면서 내 삶의 의미가 뭔지 알았죠. 마침내 그걸 깨닫고 삶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삶을 접을 때가 된 거 같군요. 레너드, 우리가 함께한 그 세월, 소중한 순간들 영원히 간직할게요, 우리의 시간들도

 

<브라운 로라>

1950년대 살고 있는 로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정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와 뱃속에 아이까지 누가 보아도 행복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깊은 심연의 어둠이 있었습니다. 로라에게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 키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키티는 로라의 집에 찾아와 자신이 난소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로라를 그런 키티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로라는 키티에게 입을 맞추고 당황한 키티를 자리를 벗어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고 깊은 절망만 가득했던 로라는 아들은 이웃에게 맡기고 죽음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온갖 약물을 있는 대로 챙겨 마지막을 보낼 장소로 호텔방을 정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뱃속의 아이까지 함께 데려갈 수는 없었는지 죽음 대신 아이를 출산한 후 두 아이와 남편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클라리사 본> 2000s

클라리사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늘 클라리사 대신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클라리사는 아침부터 꽃집에 들러 꽃을 한 다발 삽니다. 바로 친구 리처드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절친인 '리저드'는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에이즈를 앓고 있었고 클라리사는 어떻게든 리처드의 삶의 의지를 되살려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리처드는 클라리사의 눈앞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리처드를 잃고 슬픔에 잠긴 클라리사 본


그리고 슬픔에 잠겨있는 클라리사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리처드의 엄마 브라운 로라였습니다.

'디 아워스' 리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각자에게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무엇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지를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가정을 꾸리게 되고 가정에 소속 아닌 소속이 되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고 부모님이 되면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고, 자기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난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돈이 생기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자식을 다 키우고 난 뒤엔 부부가 서로 각자의 길을 떠나가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이 극 중에 나오는 여성들도 다들 자신의 삶에 대해 고찰을 하다 보니 정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거나 시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모조리 물음표투성이입니다. 왜 우리는 태어나서 왜 원하지도 않았던 인생을 살아가야 하며 왜 일해야 하고 왜 슬퍼야 하고 기뻐야 하고 원하지 않던 상황을 맞게 되고 모든 걸 내던지고 싶을 때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삶,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니 궁극적으론 이기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 여인들을 책임감이 없고 마음이 유약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고 싶지도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면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다르다면 충분히 그들에게는 저런 선택을 할 이유가 될 수도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나라는 사람은 어떤가를 살펴보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익숙함이라는 삶에 익숙해져 정말 나를 위한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 건 아닌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바보처럼 인생을 그저 숨만 쉬며 허비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당장에 저에겐 사람에게 저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바라는 바가 달라질 수 있으며 올바른 가치관과 관념을 토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거나 가정을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정말 온전한 나의 인생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사는 인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이 더 부지런히, 매 순간을 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의 기준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고 오늘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정작 마음에 여유를 하루에 얼마 두지 못하는 저를 반성하게 만듭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 '디 아워스'였습니다. 원작 '세월'이라는 의미를 여러분도 다시 한번 고찰해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