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멜랑콜리아'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출연 : 커스틴 던스트 , 샤를로트 갱스부르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 키퍼 서덜랜드 외
장르 : SF / 스릴러 / 심리극
개봉 : 2011년 10월10일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멜랑콜리아' 즉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제대로 해석하고 안 하고는 굽기 전의 파전과 굽고 난 후 파전만큼 다르다. 이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선 주인공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2부에선 클레어(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불안 장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영화로 커스틴 던스트는 칸영화제와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더욱이 흥미로운 사실은 스파이더맨, 이터널 선샤인 등으로 할리우드의 스타가 된 '커스틴 던스트'와 이 영화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모두 실제로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커스틴 던스트'는 우울증을 앓다가 이 작품으로 다시 재기했다고 한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몇십 년 동안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어 '<멜랑콜리아>'는 그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줄거리와 해석
영화 멜랑콜리아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준다. 따라서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우리에게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구 종말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구 종말이라는 상황에서 우울증의 저스틴, 불안장애의 클레어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세로는 식욕 및 수면의 변화, 무기력함, 지속적 우울, 사고력 및 집중력 저하 현저히 느려진 언행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무려 8분이라는 오프닝 시간 동안 영화를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우울증 환자들의 사고방식과 육체적으로 발현되는 행동들을 스크린 위에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직접 우울증을 겪은 감독이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그 심도가 가히 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멜랑콜리아' 속 여러 종류의 예술적인 메타포를 캐치하고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1부 <저스틴>에서 저스틴은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노력했다. 억지로 웃고 비유를 맞추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결혼식을 잘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엄마의 냉대, 언니의 핍박, 형부의 멸시 타인의 시선 등이었다. 그러면서 저스틴은 우울증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이때 저스틴은 선반에 올려놓았던 책들을 우울한 장면만 펼쳐서 다시 전시한다. 그중 3가지 미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그림, 페테르 브뢰헬의 <눈 속의 사냥꾼> 은 화가 자신이 최고 전성기 그린 그림으로 혹독한 추위 속 겨울을 나는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인 사냥꾼들은 여러 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마쳤으나 작은 새끼 여우 한 마리밖에 잡아오지 못하였다. 단순히 보았을 댄 그냥 아름다운 마을의 겨울을 표현한 듯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사냥꾼들은 절망적으로 땅만 보며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돌아온다. 감독은 혹독한 추위 속(주인공의 환경과 주변 시선 등) 절망적인 현실(턱 없이 부족한 결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사정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두 번째 그림,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전사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소년 다윗을 그린 걸작이다. 화가 카라바조는 엄청난 천재성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성격은 광폭했기에 결국 로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카라바조 또한 정신이 온전치 못 했던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교황에게 바쳐 특면 사면을 받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그림에서 잘린 골리앗의 머리는 당시 카라바조의 초상이며 소년 다윗의 얼굴은 어린 시절 카라바조의 얼굴이다. 그렇게 2중 초상을 그리며 카라바조는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벌하고 정의를 실현시킨다.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현재의 자신을 버리고 싶은 욕구 또한 내비쳐진다. 주인공 '저스틴'의 이름 자체도 Justice, 정의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저스틴에게 있어서 정의(Justice) 또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는듯하다.
세 번째 그림, 존 에버리 밀레이의 <오필리아>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문학 <햄릿>속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묘사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많은 영화에서 오마주 하며 메타포로 쓰이기도 하는데 물에 누워 꽃을 들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여성은 주로 오필리아처럼 우울증을 암시한다고 보면 된다. 이 영화에서도 슬로모션 8분의 오프닝씬에서 이 그림을 저스틴이 똑같이 오마주하고 있다.
그림 속, 문학 속 오필리아는 가장 유명한 우울증 환자 중 한 명이다.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이자 오필리아는 정신을 놓은 채 살아가다가 결국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오필리아 그림을 보면 이 여인이 죽은 것이라고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온화하고 평온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그림 오필리아를 보여주면서 우울증 환자에게 있어서 죽음이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히려 오필리아와 저스틴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겐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메시지이다.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라고 하니 저번에 다루었던 '디 아워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버지니아 울프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녀 또한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강물에 들어가 목숨을 끊었다.
조카가 이야기하는 마법 동굴,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가 떠오른다.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들은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으며 그들은 머리와 몸이 고정된 채 벽만 바라보고 있고 그 뒤에는 횃불이 있어 그들은 그림자 밖에 볼 수 없으며 그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한 죄수가 스스로 쇠고랑(스틸)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그는 햇빛을 보고 이것이 진리임을 깨닫고 동굴 밖의 생활을 누리고 돌아와 다른 죄수들에게 말해주지만 그들은 이를 조롱하며 비웃는다. 심지어 다른 몇몇 탈출한 자들은 그림자를 여전히 믿고 태양은 거짓이라며 다시 동굴로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조카는 저스틴에게 '강철 브레이커 이모'라고 부른다. 이는 곧 바깥세상을 보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스틸 브레이커 즉,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 중 진리를 보고 알고 누리는 사람이다. 저스틴은 평범한 삶(동굴)에서 살다가 세상의 전혀 다른 면(동굴 밖)인 우울증, 정신병을 앓는다. 저스틴은 동굴 밖 진리를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라스에서 와인 한잔하며 좋게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하며 동굴로 다시 돌아오는 자를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 3인 중 한 명인 조카는 동굴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평범한 삶을 사는 죄수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저스틴은 그런 조카와 언니 클레어를 위해 마법 동굴로 다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마법 동굴에서 종말을 맞이한다.
이 영화에서 1부는 지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울증 환자를 평범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2부에서는 지구 종말이라는 환경을 설정해 우리에게 우울증, 불안장애를 이야기한다. 감독은 우리에게 너희는 지구 종말이 눈앞에 거대한 행성으로 다가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냐고 묻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예술적인 표현을 통해 우울증, 정신병 환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들에겐 평온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저스틴은 행성 충돌을 마치 기다리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멜랑콜리아가 충돌을 하려 하자 1부에서 서는 우울증을 앓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던 저스틴은 오히려 온화해지고 멀쩡했던 언니 클레어는 2부에서 지구 종말이 가까워지자 빠른 속도로 불안장애를 호소한다. 이렇게 감독이 1부와 2부를 대조적으로 만들고 플라톤의 동굴을 비유한 것은 모두 우울증 환자 나 정신병 환자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일상'은 그들에겐 종말과도 같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에겐 종말이 오히려 평온으로 가는 길로 느껴진다고 그렇게 직접 우울증을 앓았던 감독이 영화적 비유를 정말 심도 있게 풀어냈다.
멜랑콜리아(우울증) 행성이 다가오면서 가장 안심하고 있던 이성적이던 클레어의 남편은 클레어가 준비해놓은 약을 먹고 비겁하게 먼저 자살을 해버리고 그다음으로 안정적인 사고를 하던 클레어 또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정신줄을 놓게 된다. 그리고 오직 저스틴만 오히려 온화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울증 환자들에게 세상은 일반인과 너무나도 정반대이며 결국 우울증은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채 동굴 안이던 밖이던 모두 파멸을 하게 된다는 해석이다.